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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을 위한 실험

[인터뷰] 밥상의 프로, 우리 엄마 - 지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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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밥상의 프로, 우리 엄마 - 지윤

2021. 2. 8. 14:09

* 이 인터뷰는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밥상에 가장 열정적인 엄마를 직접 인터뷰한 글이다. 지윤은 쿰 참가자이고 현옥은 지윤의 엄마이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지윤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요리하시나요? 식사를 준비하면서 애로사항이 있다면요?

 

현옥 요즘은 별생각 없이 담담하게 하는 것 같아.

애로사항이라면, 우선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원칙이 기본적으로 있는 거잖아. 일단 안전한 재료로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고, 그다음은 우리집의 소득수준에 맞춰야 하는 경제적 문제가 있으니까 그 두 가지 밸런스를 맞추는 게 제일 큰일인 것 같아. 이렇게 원칙이 정해지면 나머지는 거기에 맞추는 건데 원칙을 지키려면 수고가 많이 필요해.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서 떨어진 걸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고, 때에 맞춰서 생협에 주문을 해야 되고. 결품이 생기는 수도 있으니까 그럴 때는 조달하기 위해서 직접 생협을 들렀다 오거나 그런 게 제일 번거로운 일이야.

그다음에는 재고관리를 제대로 하는 거. 버려지는 것 없이 신선할 때 소비가 되도록.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도, 어제 오징어를 한 마리를 녹여놓은 게 있어서 그걸로 오징어 국을 끓였고 아욱도 사놓은 지가 일주일이 다 돼가기 때문에 국을 끓였고. 지난번 샤브샤브 먹고 약간 남은 부추가 시들어가고, 호박이랑 깻잎도 싱싱하지가 않아서 다 섞어서 부침개를 만들었지.

 

지윤 , 엄청 많이 만드셨네요.

 

현옥 세 번째로는 만든 음식이 맛없으면 소비가 안 되거나 억지로 먹어야 하니까 맛있게 조리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한다는 거. 초기에는 그 모든 과정이 다 어려웠지. 숙달되지 않았을 때니까. 조리를 잘 하려면 우선 하는 법을 잘 배워야 하고, 반복해서 해봐야 하고, 결과를 잘 따져보고 잘못된 점을 고쳐서 다시 해 보는 정교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봐야 해.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야. 그 모든 일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는 하기 어려운 것 같아. 마지못해서 할 수 없이 하면 그다음에도 똑같은 결과가 반복될 뿐 진도는 안 나가거든. 그러면 살림이나 요리는 영원히 지겹고 나를 갉아먹는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지.

 

지윤 그럼 엄마는 언제부터 요리가 손에 익기 시작했나요? 처음에 왜 요리를 잘하고 싶었어요?

 

현옥 잘 안 될 때 기분 나쁘고 활력이 떨어지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들잖아. 뭔가 내가 해야만 하는 가치 있는 일이 따로 있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만 자꾸 들고. 근데 어차피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자식이나 남편에게 제대로 해 먹이고 싶은 욕망이 기본적으로 있었지. (요리를) 하기 싫은 맘이 왜 생길까 생각해보니, 잘 못하고 힘드니까 하기가 싫었던 거지. 힘이 든다는 게 두 가지 경우잖아. 역량이 부족해서 허덕일 때가 있고, 기꺼이 할 때는 힘이 들긴 하지만 고통이라고 느끼지 않지.

 

지윤 이전의 엄마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했겠군요.

 

현옥 . 원래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희를 봐주다가 우리가 포천으로 이사 가면서 두 분도 안성에 내려가셨어. 의지할 데가 아무도 없어지고 내가 백 퍼센트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지.

 

지윤 얼마나 지나서 능숙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현옥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겠지 뭐. 기억 잘 안 나는데... 너희 유치원 때도 사람들 초대해서 멕이고 했는데 그때도 맛있게 했던 것 같으네, 그러고 보니까(웃음). 5년 정도면 익숙해진 거 같아. 짧은 시간은 아니지.

 

지윤 그러니까요, 매일같이 5년이면 엄청 긴 거죠. 식사 준비는 재료 구입-메뉴 선정-요리하기-뒷정리라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에 가장 스트레스인 과정이 있다면요? 예전에 엄마가 매일 무슨 반찬을 만들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어요.

 

현옥 밥을 해 먹는 문제는 내 다른 삶의 영역과 분리되는 문제가 전혀 아니야. 내 자의식이 남아있고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는데 여기에 시간을 쏟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빠에게 밉고 불편한 감정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을 때. 즉 문제가 상대 탓이라고 생각될 때 당연히 밥하는 게 싫어. 도시락을 매일 싸주긴 해도 거기에 감정적인 찌꺼기가 붙는다고. 공부를 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신체적인 역량도 커졌으니까.., 지금은 담담하게 감당하게 됐어.

 

지윤 메뉴 떠올리는 것도요?

 

현옥 메뉴는 언제나 할 수 있는 재료로 구성하는 편이야. 생협에 있는 제철 재료와 내가 쓸 수 있는 재료값을 고려해서 구입한 뒤 그때그때 남아있는 재료로 메뉴를 정해. 해 먹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나물처럼 손이 많이 가고 식구들이 별로 안 먹을 것 같으면 안 사기도 해. 예전에는 특별히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마음이 많았는데 지금은 별로 그런 거 없어. 넘치는 게 건강에도 안 좋은 경우가 많으니까 제대로 된 음식을 소박하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해.

 

지윤 우와, 재료를 산 다음에 메뉴를 구상하는지는 몰랐어요.

 

현옥 난 첫째 낳고서 어떻게 애를 키워야 되지?’ 애를 낳아놓고 처음 생각을 해 봤는데. 생각을 해 보니 일단 할 수 있는 게 제대로 먹이는 거랑 책 읽어주는 거 두 가지 뿐이더라고. 그래서 산후조리할 때 인체에 관한 책, 식품영양학 책을 사서 봤어. 그때 처음으로 생협, 민우회 생협을 알아가지고 가입을 했는데. 그래서 내가 거의 초창기 멤버거든. 그때부터 생협에서 받아먹기 시작을 했으니 거의 35년쯤 된 거네. 그다음에 전적으로 내가 살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재고관리표를 붙이기 시작했잖아. 계기가 있어. 재우[막내] 낳고 얼마 안 돼서 허덕허덕하다가 잠시 휴가받아서 피정을 갔다 왔는데. 그동안 아빠 혼자 밥을 챙겨 먹었을 거 아니야. 아빠가 나한테 냉동실에 왜 까만 봉지가 이렇게 많아?’하는데 그때 내가 정신을 딱 차렸지. 비난의 투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해선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 그때부터 내가 재고관리표를 붙이기 시작했어. 생협에서 일주일에 한 번 물건을 받으면 현재 냉장고에 남은 재료와 그걸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붙여놓는 거야. 25년쯤 한 것 같네. 물론 가계부도 꼬박꼬박 썼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완벽해졌지. 지금은 적절하게 주문하고 소비하고 이게 밸런스가 맞는데 옛날에는 항상 넘치게 주문하게 됐지. 이것도 해 먹으면 좋겠다 주문했다가 나중에 귀찮아서 버리는 거거든.

 

지윤 지금은 재고관리표가 없는데 재고가 머리에 입력돼 있어요?

 

현옥 .

 

지윤 프로다.

 

현옥 프로지. 난 내가 프로라고 생각해.

 

지윤 저는 엄마에게 기생하는 입장에서 미안함과 죄책감, 고마움 등을 느끼는데요. 엄마 입장에서는 자식의 기생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궁금합니다. 혹은 바라는 것이 있나요?

 

현옥 그 문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웃음). 우리 집 애들은 항상 할 수 있는 건 하면서 도와주는 편이지 먹고 쌩까는 애는 없었잖아. 설거지라도 하고. 그래서 그런 느낌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고 내가 그 나이였을 때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내 새끼들은 기본적으로 제대로 사는 삶이 뭔가 하는 고민이 있으니 그걸로 됐고 진도가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해.

기대는 없지만 내가 없을 때도 니가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걸 보면 기분이 되게 좋지. 믿음이 가고. 현수[둘째]도 생협에서 장 봐서 먹고 이런 걸 보면 매우 좋다고.

 

지윤 오호. 엄마가 우리 나이였을 때는 어땠는데요?

 

현옥 나는 아무 의식이 없었어. 엄마를 도와야 된다는 생각이 없었고 결혼 전까지 집안일 거의 해본 적도 없고. 단칸방에서 거의 할 수도 없었지. 어쩌다가 설거지나 한 번 하고. 엄마가 어쩌다 이모네 집에 가면 아버지 청국장 끓여서 밥해 드리고. 대신 결혼을 일찍 했으니까 스물 넷부터 밥 해먹고 살았는데, 생각보다 그냥 잘 해먹고 살았어. 소박하고 맛있게.

 

지윤 자식이 커 가면서 요리 부담이 조금 줄었어요, 혹은 그대로인가요?

 

현옥 너네가 커서 줄었다기보다는, 여러 맥락에서 내가 노련해지기도 했고, 먹는 거에 대해서도 강박이 줄고. 그런 면에서 준 거지. 근데 재우[막내] 같은 경우는 아직 스스로 제대로 해먹을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챙겨주고 있잖아. 남들이 볼 때는 극성이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 기준이 보인다고. 아직은 조금 더 도와줘야겠구나. 그건 의지가 아니라 역량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윤 저도, 재우도 완전히 독립해서 스스로 식사를 책임지게 되면 기존 살림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현옥 생각 안 해봤는데 그때 맞춰서 하겠지? 지금도 특별히 뭔가를 하는 건 없어.

 

지윤 엄마는 본인이 만든 음식을 왜 잘 안 먹게 되시나요?

 

현옥 아냐 그래도 국이나 이런 거 남으면 가져가서 먹고.

 

지윤 본인이 만들어서 더 맛없어?

 

현옥 그건 아니고 남이 차려주면 그냥 있으니까 수동적으로 더 먹는 거 같기는 해.

 

지윤 가끔 다른 사람이 요리해준 것을 먹을 때 어때요?

 

현옥 고맙고 좋지 뭐(웃음). 전에 **네 초대받았을 때 언니가 차려준 거 먹을 때는 얼마나 나를 위해 수고롭게 차렸나, 이런 걸 아니까 엄청 고맙데.

 

지윤 차려 낸 과정을 아니까 더 그랬겠네.

 

현옥 그렇지. 내가 가끔 아빠에게 불만인 것도, 모르면 당연하게 먹으니까. 예전에는 요리를 해주면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생각도 없어. 그냥 내가 하는 거지.

 

지윤 그 고마움은 직접 요리를 해봐야 아는 걸까요?

 

현옥 꼭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음식을 먹으면 나하고 그 음식이 만나는 거잖아. 그 과정에 대한 적합한 사유가 있으면 가능할 텐데. 생각 없이 당연하게 먹으면 그건 그냥 나에게 닥치는 사건을 수동적으로 겪는 거지 뭐. 과정을 생각할 수 있다면 고마운 마음도 생기고 상대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감사의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는데, 그러면 서로 좋지 않을까? 나는 그런 관계가 우정이라고 생각해!

 

지윤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는 엄마가 식사와 영양에 관한 전문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먹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현옥 스피노자가 얘기했듯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데는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존재하지 않는 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 그냥 생기거나 그냥 없어지는 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정확하게 먹은 만큼의 신체, 사용한 만큼 신체로 드러나잖아. 내가 먹은 게 몸에 들어가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내 반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세월을 수동적으로 겪고 잘못 사용하면 근골격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과도한 비만과 성인병을 앓게 되기도 하잖아. 그런 일들은 나이에 비례해서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니거든. 먹는 게 내 몸이 되는 건 정확한 자연의 법칙이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처럼.

 

지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눈에 안 드러나서 그런가. 그렇다면 엄마가 생각하는 좋은, 잘 먹기란 무엇일까요?

 

현옥 우리 신체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활동을 유지하는 거 하나, 몸 안의 부적절한 것들을 청소하는 면역시스템 하나, 이 두 개가 잘 굴러가야 하는데. 청소를 방해하는 것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감당할 수가 없어서 질병이 생기는 거니까 그 두 가지를 잘 할 수 있게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점점 육류보다는 채식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 찌꺼기를 내지 않고 몸에 충분한 에너지도 공급해 주니까.

초기에는 충분한 재료로 음식을 맛있게 하는 게 고민이었다면, 중간쯤에는 있는 걸 최대한 활용해서 어떻게 최대한 잘 먹을까를 고민했고. 지금은 어떻게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살림을 꾸릴 수 있을까가 고민인데 아직 답을 못찾겠네. 하긴 원래 정답이란 없는 거니까.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실험만 있는 거지.

 

지윤 같이 고민해 봐요. 최근 영양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죠? 예전에는 골고루 먹는 것을 중시하셨던 것 같은데.

 

현옥 맞아. 학자마다 (영양에 관해) 생각이 다 달라서 결국 우리 스스로 기준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 우리 몸은 엄청 탄력성이 있어서 꼭 이거 아니면 안 된다, 는 없는 것 같고. 뭐가 더 내 몸에 맞는 방식인지는 각자가 결정해야 되는 거 같아. 육류는 이점도 있지만 찌꺼기 같은 해를 더 많이 남기고, 윤리적으로도 그렇고. 그래서 가능하면 식물성으로 섭취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지. 끝났어?

 

지윤 , 더 하고 싶은 얘기 있을까요?

 

현옥 예나 지금이나 나는 밥해 먹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거 말고 해야 될 더 가치 있는 일이 뭐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웃음). 별로 없더라고. 그래서 밥을 잘 해 먹고 공부를 하고, 그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지. , 살림을 한다는 건 단순히 요리를 잘한다는 것과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

 

 

우리는 이야기를 마치고 함께 양파 껍질을 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