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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을 위한 실험

[에세이] 선영의 실험_식탁 위의 기쁨과 슬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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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선영의 실험_식탁 위의 기쁨과 슬픔

2021. 2. 8. 11:39

#집콕 #음식물쓰레기줄이기 #해먹기_도전
#Do_It_Yourself


Character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대학원생. 가족구성원 4명과 함께 살고 있다. 요즘은 전공이 나에게 맞는지, 어떻게 살아갈지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다. 세상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기보다 일상에서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에서 변화를 위한 실험을 계획하고. 직접 경험해나가는 쿰 프로젝트 과정에 흥미를 느껴서 참여하고 있다.


EP 0. 우리 뭐 먹고 살지? 실험을 시작하다.
뭐 먹고 살지? 최근 친구들과 허심탄회하게 말하면서 대화의 끝에 많이 했던 대사다. 우리가 매번 던지는 이 말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는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진짜 매일매일 내 식탁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고 있을까? 이전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때는 그냥 사먹으면 해결되었는데, 이제는 매일 식탁을 준비하는 게 새로운 고민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수업과 일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대학원생인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내가 문제의식을 느낀 지점은 냉장고 3대가 있을 정도로, 집에 언제나 쌓여있는 재료들과 음식들이었다. 자세히 관찰해 본 결과 3일에 한번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채워서 버리는 것 같다. 부채감과 죄책감이 들었다. 부채감과 죄책감을 해소하려면 내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요리를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노란색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담기기 전 식재료도 구해낼 수 있을까?

EP 1. 우리 집 식탁 실태보고서
야심차게 요리 실험을 하자고 다짐했지만, 정작 실험 초기에는 음식을 직접 해먹을 필요가 없었다. 새롭게 해먹기보다 남는 음식을 먹어치우는 게 주된 실험이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식사를 하는 방식을 간략하게 관찰해본 결과, 모두 모여서 먹는 시간은 주말이나 특별한 날이 되어야 가능했다. 보통은 각자의 생활패턴에 맞게 밖에서 사먹거나 집에서 이미 조리된 메인 요리를 활용해 먹거나, 엄마가 해주는 밥상을 먹고는 했다. 이번 주는 엄마가 큰 냄비에다가 많은 양의 카레를 요리해주셨다. 감자, 고기, 양파가 들어간 카레는 밥과 김치와 조화가 좋았다. 어느 날은 김치랑, 또 어떤 날은 김치에 멸치반찬을 꺼내 먹으면서 한 끼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며칠간 엄마가 해주신 요리를 먹으면서 느낀 게 있다면 식탁에서는 요리를 해주는 사람만큼 잘 먹어주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집에서 단골처럼 했던 말 중에 하나가 “너희가 음식을 해 놓으면, 먹을 거 사놓으면 또 안 먹어.” 이었다. 엄마가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 요리를 해놓거나, 식재료를 사놓아도 집에서 그것을 먹지 않는 우리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동안 집에서 음식물쓰레기가 만들어진 배경에도 엄마가 해놓은 음식을 제때 잘 먹어준 식구들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EP 2. 식재료 다듬을 때만은 내가 오늘의 요리사
8월 청년 쿰 활동이 있어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여러 명이 앉는 식탁에서 내가 요리의 한부분에 같이 참여한다는 것은 뭔가 부담이 크게 없다. 다 같이 만들어가는 요리니까. 만약 혼자 식탁을 준비했으면 부담이컸을 것 같다. 오늘의 저녁은 예고했던 대로 야채전골이다. 식재료를 씻고, 버섯과 미나리를 자르는 역할을 맡았다. 사각 사각 버섯과 야채를 자르는 느낌이 좋다. 요리를 하는 것은 어렵지만 식재료를 다듬는 것은 마치 내가 요리를 잘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EP 3. 가지, 너를 알고 싶어 
지난 주말 쿰 텃밭에서 가지를 받았다. 가지를 받는 순간 내가 먹었던 온갖 맛있는 가지요리를 상상했다. 중국음식집의 가지구이, 지난번에 먹은 가지볶음 밥 도시락. 나에게 가지요리는 좋은 기억이 더 많았기 때문에 맛있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 월요일 점심을 위해 유튜브에서 가지요리를 검색해 보았다. 백종원의 가지가지 요리, 폭풍 흡입하는 김수미표 가지전, 양념치킨맛 깐풍가지튀김, 가지구이 무침부터 중국의 어향가지까지 다양한 가지 요리들이 나왔다. 자칭 돈받고 팔아야 하는 가지볶음 요리도, 놀라운 가지요리도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점심은 가지구이로 정했다. 영상에 나온 대로 가지를 모양대로 썰고, 소스를 바른 뒤에 굽기만 하면 되어서 간단해 보였다. 레시피에 따라 간장, 발사믹 식초를 섞은 소스를 만들었다. 가지 모양은 구이하기 편하게 길쭉길쭉 얇게 썰어보았다. 가지 모양을 또 새롭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 가지 안에 씨 모양이 있는 것을 나는 이 때 처음 보았던 것 같다. 소스가 남는 게 아까워서 조리과정에서 묻힐 수 있을 만큼 뿌려서 구웠는데, 색깔이 약간 탄 것처럼 나왔다. 소스를 너무 많이 뿌린 탓인가. 가지 맛보다 소스 맛이 처음에는 강했다. 특히 발사믹 식초와 꿀의 달콤함이 재료 본연의 맛을 덮어버렸다. 소스 맛과 물컹한 가지의 느낌만 남았다. 소스 양을 조절해서 구운 가지는 구운 가지의 고소함과 물컹한 가지의 느낌이 모두 살고, 짜지도 않았다. 적당히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가지요리에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EP 4. 살짝? 한 큰 술? 소스 양 조절은 어려워
저녁 시간이 되자 배가 고팠다. 동생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어 일단 나 혼자 차려먹기로 했다. 요린이인 나는 요리를 할 때 아직까지 내가 먹을 1인분의 요리를 해먹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예상할 수 없는 맛의 위험부담을 나 혼자 감당하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뜯어놓은 어묵봉지가 보였다. 엄마도 오늘 지인들이랑 외식한다고 했는데, 버려지기 전 어묵을 활용해 볼까? 냉장고에 아침에 먹던 깐 마늘 몇 개가 있었기 때문에, 검색창에 마늘과 어묵을 검색했다. 마늘 어묵 볶음이 나왔다. 마늘과 어묵 외에는 간장만 있으면 되니까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요리법을 살피는데 어묵은 튀긴 것이기 때문에 살짝 데치는 게 좋단다. 살짝 데치는 거? 어떻게 해야 살짝 대치는 거지? ‘살짝 데침’을 검색해 보았다. 다들 살짝 데치라는 말만 하지 어떻게 하는지, 몇 분인지 말을 안 해준다. ‘살짝 데침’을 계속 검색한 끝에 7~8초 정도라는 문구를 보고 감을 잡았다. 물이 끓자 정말 한 10초 정도 뜨거운 물에 어묵을 담가주고 찬물로 다시 씻어주었다. 그 다음에는 마늘을 볶고. 간장을 살짝 부어서 어묵과 함께 볶아주었는데, 간장을 넣으면서 이러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에 한 숟가락 더 넣었더니 역시나 짰다. 짜지만 밥반찬이라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새로 만든 반찬과 엄마가 미리 해준 미역국으로 한 끼를 마쳤다.

EP 5. 너 배달 안 시켜 먹는다며? 아니, 이건 밀키트만 온 거란다
오늘은 아무런 일정이 없고, 코로나 확산으로 외출을 삼가는 편이라 집에 있기로 했다. 이제 막 일어난 동생이 배고픈 얼굴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본다. 나는 엄마가 해놓으신 고추장찌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반찬을 꺼내서 먹으면 되지 않을까? 라고 했다. 동생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무언가를 배달해 먹는 것은 쓰레기가 많이 나올 텐데. 동생은 배달 떡볶이는 양이 많고, 쓰레기가 나와서 시키지 않기를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랬는데 떡볶이 밀키트가 배달왔다. 직접 떡볶이를 해먹을 수 있게 소스와 떡이 적당량으로 비닐로 포장되어서 오는 제품이다. 동생이 밀키트의 재료와 소스를 가지고 요리한 떡볶이를 나도 출출해서 떠서 먹었다. 소스가 좀 달달하다. 그리고 동생은 저녁식사 약속이 있다며 외출을 했다. 그런데 아직 남은 떡볶이. 지금 바로 먹지 않으면 아무도 먹지 않은 채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다. 그래서 저녁 식사로 이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집에 엄마가 해놓으신 고추장찌개를 살짝 덜어서 떡볶이와 섞어서 부대찌개 같은 요리를 만들었다.

EP 6. 여기 설거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동생이 집에 있는 떡볶이와 밥을 이용해서 저녁식사를 차렸다. 동생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해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를 해먹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어떤 때는 콜드파스타, 고기버섯구이 등을 식사로 만들었다. 대부분 동생이 요리를 하는 동안 나는 도와준 것이 크게 없어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하였다. 설거지를 하면서 식탁에 앉아 있는 동생에게 재료 준비, 요리 과정, 식사, 마무리 과정 중에 어떤 것이 좋은지 물어 보았다. 동생은 요리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뒷정리는 귀찮아서 싫다고 했다.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다시 새로 쓸 접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 동생에게 물어볼 때는 ‘뒷정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식재료를 다시 용기에 넣고, 싱크대를 깔끔하게 정돈하다보니  정작 내 취향에 조금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매번 식사 후 바로바로 한다면, 밥 먹은 시간보다 더 짧고 간단하게 끝나는 게 설거지다. 내가 다시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해야 또 새로운 식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각자 좋아하는 부분이 다르지만 모두 필요한 과정이다.

EP 7. “해먹는 것이 사먹는 것 보다 더 싸네?”
저녁에 마라탕을 요리해 먹었다. 동생과 나는 둘 다 마라탕을 좋아한다. 마라탕은 다양한 야채와 버섯을 넣어 먹을 수 있고, 특유의 맛을 가진 육수와 익혀진 야채의 식감이 맛있다. 최대한 냉장고 속 재료를 활용해서 먹기 위해 동생이 집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미리 파악해 와서, 집 앞 마트에서 만났다. 마트에서 각자 좋아하는 재료를 골라 담았다. 새우가 들어있는 냉동 해물볶음, 부침 두부, 배추, 청경채, 버섯 2종류를 구입했다. 내가 마라탕에 넣어먹기 좋아하는 목이버섯과 얇게 퍼진 두부(푸주)가 없어서 아쉬웠다. 재료값으로 18,320원이 나왔는데, 동생이 영수증을 보더니 해먹는 게 사먹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언급했다. 심지어 재료를 그렇게 사왔는데도 필요한 재료만 잘라서 쓴다. 
나는 항상 음식이 모자랄까봐 걱정하며 요리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직접 식재료 구입부터 해보니까 한두 사람이 먹는 데 식재료는 그렇게 많이 쓸 필요도 없었다. 야채들을 먼저 다듬고, 미리 사둔 마라탕 소스에 집에 있던 고기를 볶고 물을 붓고 야채들도 넣어서 마라탕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라탕에 다 들어가지 못한 버섯과 청경채를 사용해서, 동생은 즉흥적으로 야채볶음도 탄생시켰다. 요리 과정은 순탄했지만 같이 요리하는 동생 옆에서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급하게 움직이다가 그릇 하나를 깨먹었다. 그것 빼고는 완벽한 식사였다. 동생과 서로 자축하며 맛있게 요리를 완성시킨 과정에 고마움을 전했다. 두 명이서 마라탕을 먹은 후에는 냄새를 빼기 위해 창문도 열고, 싱크대도 닦고, 그릇들도 설거지를 하면서 뒷정리까지 마쳤다. 집에 늦게 온 다른 가족들은 마라탕을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깔끔한 뒷정리였다.

EP 8. 나의 식탁, 나의 부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해먹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사먹는 것은 남기게 되고, 남은 것을 다시 먹을 수도 없다. 직접 해먹으면서 식사 적당량을 맞추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식재료를 쓰거나, 반찬을 놓다보면 괜히 모자라지 않을까 더 놓게 되는데, 직접 해보니 내가 어느 정도만 먹어도 만족하는지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었다. 한 달 간 부엌을 자주 드나들고, 식탁을 관찰하고, 요리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부엌 공간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집에서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를 할 때 이렇게 해도 될까 나도 모르게 눈치 보거나 망설였던 순간이 종종 있었다. 동생이랑 식사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대화를 하면서 보니 나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부엌은 엄마의 공간이라 여겨서 내가 여기서 무언가를 해도 되나?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동생이 말했다. 밥 안 먹고 사는 사람도 있나? 부엌은 누구만의 공간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