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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을 위한 실험

[에필로그] 그 언젠가 주체적 요린이를 꿈꾸며-지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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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 언젠가 주체적 요린이를 꿈꾸며-지윤

2021. 2. 15. 12:00


1. 여전한 기생, 발전한 콤비

첫 실험을 시도한 후 벌써 반년이 흘렀다. 당시 나름의 변화를 확인했지만, 실험이 끝나면 도로 해이해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실험의 효과는 은은하게(?) 지속되고 있다. ‘잘 먹기’에 대한 고민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나는 엄마의 밥상에 성실하게 기생 중이다. 엄마의 요리는 고기반찬 없이도 풍요롭고 새삼스럽게 맛있다. 실험 이후 엄마가 나보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 수고를 분담하고자 ‘오늘 저녁은 이거 어때? 내가 만들게.’ 하고 가끔 제안하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가 이미 생각해 둔 메뉴가 있었기에 내 제안이 실현된 적은 없다(쭈굴...). 사실 식재료를 구매하고 그날의 메뉴를 구상하는 것은 유기적인 과정이다. 이 부분에서 엄마가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대신 우리가 함께 저녁 준비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있다. 그런 날은 엄마가 전체 메뉴를 진두지휘하고 나는 그중 한 가지 요리 및 보조(재료 꺼내기, 손질 등)를 담당한다. 말하자면 셰프와 파트장 정도의 역할 분담인 셈이다. 내가 튀김을 겨우 하는 동안 셰프가 찌개와 몇 종의 반찬을 휘리릭 해내는 모습을 보면 감탄스럽다. 사실 이렇게 차려낸 식탁의 최대 수혜자는 아빠지만, 엄마도 나와 함께 일하면서 식사 준비에 대한 부담이 확 줄어 만족스럽다고 말씀하신다. 요리에 걸리는 시간도 30분이 줄었다고 한다. 함께 감당할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식사 준비가 훨씬 할만해지는 것 같다. 아직은 혼자 한 상을 차려내는 일이 부담스러운 나도 부분적으로 밥상에 기여할 수 있어 좋다.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는 점도 있고 말이다. 

2. 가성비보다 중요한 게 있다?- 뿌듯함

음식에서 가성비 이상의 것을 발견했다는 건 내게 꽤나 놀라운 변화다. 이전에는 식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도 적은 편이어서 한 끼를 먹기 위해 수고를 들이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자주 하던 말도 “그 요리 안 하면 안돼?”였다. 
에필로그를 쓰려고 사진첩을 뒤져 보니 몇 달간 누군가와 함께―우리 집에 초대해서, 그 친구 집에 가서, 혹은 함께 다른 곳에 놀러 가서― 요리해 먹은 일이 제법 많아서 놀랐다. 이 경우는 딱히 실험을 의식하고 시도한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혼자였으면 귀찮아서 해 먹지 않았을 음식도, 그 사람이 뭘 맛있어할까 고민하면서 만들면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하루는 친구를 점심에 초대해 멸치육수를 우리고 재료를 다듬어서 월남쌈과 야채 샤브샤브를 준비했다. 그날따라 창밖으로 눈 쌓여 하얗게 변한 산봉우리와 청명한 하늘이 잘 보였다. 무척 맛있게 먹고 나서 친구가 했던 ‘뿌듯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번에 만날 때 우리는 밖에서 꼭 같은 메뉴를 사 먹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감상이 추가된 것이다. 맛있다+배부르다는 감상 외에 뿌듯함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건강한 재료들로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어 뱃속이 편했고(재료를 내가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 집이라는 편한 공간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친구도 함께 칼을 쥐고 입에 들어갈 재료를 썰었기 때문은 아닐까? 복합적인 기쁨이 녹아 있는 이 감정을 지금은 뿌듯함, 만족감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누군가들과 함께 요리해 먹었던 한끼 식사들


그간 나는 요리의 멋짐을 몰랐던 것 같다. 경험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요리의 멋짐을 발견하면서부터는 ‘좋은 식사’의 이상도 조금 바뀌었다. 생일이나 잔칫날 다 같이 근사한 음식점에 가서―누구의 힘도 들이지 않고―맛있고 깔끔하게 식사를 마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밥 모임이었다면, 지금은 모임을 핑계로 혼자일 땐 귀찮아서 안 하게 되는 메뉴를 정해 굽고 볶고 끓이고, 맛을 품평하고 칭찬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도 좋다(물론 너무 복잡한 요리는 아직 안 된다,, 하하). 가끔은 요리가 조금 망하거나 손님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도 좋다. 해 보니까 정말 즐거웠기 때문이다. 


3. 언젠가 주체적인 요린이가 될 거야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언젠가 내가 먹기의 전 과정을 책임질 때가 온다.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된다면 그이의 한 끼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엄마에게 좀 더 질문이 많아졌다. 이 양념이나 국물은 어떻게 맛을 냈는지. 집에서 매일 먹는 쌀은 현미에 어떤 잡곡들을 더한 것인지. 양념용 파와 고추는 미리 다져서 얼려두면 편한데 왜 마늘은 그렇지 않은지 등(마늘은 미리 다져두면 진물이 생겨 맛이 덜하다고 한다). 가장 부럽고 대단해 보이는 건 눈대중으로 재료의 양을 맞추는 비결이다. 이 모든 건 먹고사는 일을 ‘실전’으로 받아들이면서부터 생긴 호기심이다. 
우리는 식재료를 통해 무수히 많은 개체(인간, 동식물, 자연을 포함)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먹기’를 의식할수록,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이 좋은 먹기에 대한 고민과 다르지 않음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 지금 나는 어떤 것이 좋은 음식인지 고민하고, 식재료를 먹기 좋은 음식으로 바꾸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나아가서는 안전하고 좋은 재료에 대한 나의 기준을 갖고 싶다.